호르무즈 해협 봉쇄, 유가 150달러 시대가 오나?

세계 경제의 숨통,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유가 150달러 시나리오

매일 아침, 우리가 자동차 주유 경고등에 신경 쓰고, 난방비 고지서에 한숨을 쉴 때, 그 가격을 결정하는 진짜 열쇠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뜨거운 사막의 열기와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닷물이 만나는 곳, 이란과 오만 사이에 놓인 폭 33km의 좁은 바닷길, 바로 호르무즈 해협입니다. 이곳은 현대 산업 사회의 생명선인 '검은 황금', 원유가 흐르는 세계 경제의 '숨통'이자 가장 치명적인 '경동맥'입니다. 지금,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이란이 이 숨통을 틀어쥘 수 있다는 공포가 유령처럼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이 해묵은 위협이 단순한 엄포를 넘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무너져 내릴까요? 유가 150달러라는 숫자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도의 작은 선, 그러나 세계를 움직이는 동맥

 

지도 위에서 호르무즈 해협은 그저 작은 선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선이 품고 있는 경제적, 전략적 가치는 가히 천문학적입니다. 몇 가지 핵심적인 숫자가 그 중요성을 증명합니다.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20~35% :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UAE, 카타르 등 OPEC의 거인들이 생산한 원유 대부분이 이 좁은 해협을 통해 유조선에 실려 아시아의 공장 지대로, 유럽의 항구로, 미국의 정유 시설로 향합니다.

전 세계 LNG(액화천연가스)의 30% : 미래의 에너지원이라 불리는 LNG 역시 이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계 시장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중동산 원유의 99% : 우리에게는 더욱 절박한 문제입니다. 울산의 정유 공장을 돌리고, 서울의 배달 트럭을 움직이게 하는 중동산 원유의 거의 전부가 이 해협을 통과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은 곧 대한민국 경제의 안전과 동의어인 셈입니다.

지리적으로도 이곳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해협을 따라 늘어선 이란의 케슘, 라라크 같은 섬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불침항모 역할을 하며, 해협의 가장 좁은 통항로는 폭이 불과 2km에 불과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해안포와 미사일, 기뢰 몇 발로도 거대한 유조선의 길을 막을 수 있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병목 지점(Chokepoint)'입니다.

수십 년간의 체스 게임, 이란의 최후의 카드와 미국의 방패 

 

이처럼 중요한 곳이다 보니, 호르무즈 해협은 오랫동안 강대국들의 힘이 맞서는 거대한 체스판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이란에게 이곳은 미국과 서방의 압박에 맞서는 최후의 협상 카드였습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유조선 전쟁을 벌이며 해협을 위협했던 역사부터, 최근 몇 년간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강화될 때마다 유조선을 나포하거나 GPS를 교란하며 무력시위를 벌여온 것까지, 이란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면, 우리도 세계 경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겠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왔습니다.

이에 맞서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연합호위작전(IMSC)을 창설,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 함대와 함께 이 해협을 순찰하며 사실상의 해상 경찰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바레인에 주둔한 미 해군 제5함대는 이란의 어떠한 도발에도 즉각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과시하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레드 라인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 이스라엘과의 전면전 위기 속에서, 이란이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 맞서기 위해 이 호르무즈 카드를 만지작거릴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이란은 미국과의 정규 해전에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고속정과 자폭 드론, 해안에 숨겨진 대함 미사일, 그리고 바닷속에 은밀히 부설하는 기뢰 등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비대칭적인 전력으로 해협을 마비시키는 전략을 발전시켜 왔던 것입니다.

유가 150달러 시나리오, 봉쇄가 현실이 된다면?

 

만약 이란이 이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전 세계 경제는 그야말로 아마겟돈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파급 효과는 연쇄적인 도미노처럼 우리 삶을 덮칠 것입니다.

즉각적인 금융 쇼크가 시작될 것입니다. 봉쇄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뉴욕과 런던, 도쿄의 금융 시장은 패닉에 빠질 것입니다.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50% 이상 폭등하며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 JP모건 같은 기관의 예측처럼 최대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의 가격이 오를 것입니다. 유가 폭등은 즉시 주유소 기름값 인상으로 이어집니다. 곧이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오르고, 운송비 증가로 마트의 식료품 가격표가 바뀝니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 제품부터 건설 자재까지, 우리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의 가격이 들썩이기 시작합니다.

최악의 시나리오,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은 원자재 값과 물류비 상승으로 투자를 줄이고 고용을 동결합니다. 소비자들은 치솟는 물가에 지갑을 닫습니다. 결국 경기는 빠르게 침체되는데 물가만 오르는 최악의 경제 상황,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과 같은 국가는 그 충격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나마 현실적 시나리오라고 보는 전면 봉쇄 대신 제한적 통제입니다.
그렇다면 이란은 정말로 해협을 봉쇄할까요? 대부분의 전문가는 전면 봉쇄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이는 이란에게도 경제적 자살행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란 역시 무역의 90%를 해상에 의존하며, 무엇보다 최대 고객인 중국과 인도의 분노를 살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 개입을 정당화시켜주는 빌미가 됩니다.

따라서 이란은 전면 봉쇄라는 극단적인 카드 대신, 유조선을 선별적으로 나포해 인질로 삼거나, 후티 반군 같은 대리 세력을 이용해 홍해 등 다른 해상 길목의 긴장을 높이는 제한적 통제와 하이브리드 전쟁을 통해 미국과 서방을 압박하는, 훨씬 더 교묘하고 현실적인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제한된 위협만으로도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고 세계 경제를 불안에 떨게 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바다 위 좁은 길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세계화 시대의 풍요와 안정은, 사실 이처럼 취약한 몇몇 숨통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엔진오일 한 방울, 공장을 돌리는 전기, 바다를 건너오는 수많은 상품들. 이 모든 것의 운명이 지구 반대편의 좁은 바닷길을 둘러싼 정치적 바람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미래는 단순히 중동의 문제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자 피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