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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중국 옆 나라의 생존 전략, 베트남은 어떻게 강해졌나

by 박스피군 2025.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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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강대국 사이 베트남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술

세계 지도를 펼쳤을 때 가장 아슬아슬한 위치에 자리 잡은 나라, 바로 베트남의 생존 전략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북쪽에는 거대한 이웃 중국이, 동쪽과 남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분쟁 수역인 남중국해가 펼쳐져 있죠. 이런 환경 속에서 베트남은 어떻게 강대국들 사이에서 기회를 잡고, 국익을 지켜내고 있을까요? 다른 나라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는 법이죠. 대나무에 비유되는 그들만의 놀라운 외교술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습니다.

축복이자 저주, 베트남의 지정학적 위치

베트남의 외교를 이해하려면 먼저 지도를 봐야 합니다. 남북으로 1,650km 길게 뻗은 S자형 국토는 약 3,260km에 달하는 긴 해안선을 따라 남중국해(베트남에서는 동해라고 부릅니다)를 품고 있습니다.

지리적 특징 :

북쪽 : 영원한 이웃이자 경쟁자인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서쪽 : 라오스, 캄보디아와 연결됩니다.

동쪽/남쪽 : 세계 물류의 핵심 통로이자 자원의 보고, 그리고 영유권 분쟁의 중심지인 남중국해가 있습니다.

이 위치는 그야말로 양날의 검입니다. 동남아와 동북아,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길목에 있어 교역과 교류에 유리한 전략적 요충지이지만, 동시에 강대국들의 힘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최전선이기도 합니다. 특히 수천 년간 중국과 국경을 맞대며 협력과 침략의 역사를 반복해온 경험은 베트남의 DNA에 생존과 균형이라는 감각을 깊이 새겨 넣었습니다.

외교철학,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란 무엇인가?

이런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베트남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 바로 대나무 외교입니다.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천명한 이 외교 철학은 대나무의 특성에 베트남의 전략을 빗댄 것입니다.

튼튼한 뿌리 (Strong Roots) : 국가의 독립, 주권, 국익이라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의미합니다.

견고한 줄기 (Solid Trunk) : 국민적 단결과 경제적 번영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자강(自强)의 의지입니다.

유연한 가지 (Flexible Branches) :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부드럽고 실리적으로 움직이는 외교적 유연성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원칙은 지키되, 방법은 유연하게라는 뜻이죠. 강풍에 맞서 뻣뻣하게 서 있다가 부러지기보다는, 부드럽게 휘어지며 힘을 분산시키고 결국 다시 일어서는 대나무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베트남의 국방 정책인 4불(四不) 정책으로 구체화됩니다.

1.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는다.

2. 어느 한 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손잡지 않는다.

3. 외국 군대가 베트남에 주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4. 국제관계에서 무력을 사용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

이는 어느 한쪽 편에 완전히 서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모든 강대국에게 우리는 당신의 적이 될 생각이 없으니, 우리를 적으로 만들지 말라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베트남은 어떻게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베트남은 이 대나무 외교를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구사할까요? 최근 몇 가지 사례를 보면 그들의 전략이 얼마나 정교한지 알 수 있습니다.

사례 1 : 미국과 중국 사이, 절묘한 균형 잡기

2023년, 베트남 외교의 진수가 펼쳐졌습니다. 9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고,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를 최고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베트남을 인정한 상징적인 사건이었죠.

그런데 불과 석 달 뒤인 12월, 이번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을 찾았습니다. 베트남은 중국과 미래를 공유하는 전략적 운명공동체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하며 역시 최고 수준의 관계를 과시했습니다.

미국에게는 안보와 첨단 기술 협력의 손을, 중국에게는 경제와 체제 안정의 손을 내밀며 양쪽 모두에게 우리는 당신의 중요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입니다. 한쪽과 가까워지면 다른 한쪽이 불안해할 상황을 오히려 양쪽 모두와의 관계를 격상하는 기회로 활용한 것입니다.

사례 2 : 남중국해 분쟁과 회색지대 전술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는 베트남의 주권이 걸린 가장 민감한 사안입니다. 막강한 해군력을 가진 중국과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기에, 베트남은 회색지대(Gray-Zone) 전술이라는 영리한 카드를 사용합니다.

이는 전면전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그 사이의 모호한 영역에서 실리를 챙기는 전략입니다. 분쟁 해역에 해군 군함 대신 해안경비대(해경) 함정이나 민간 어선을 대규모로 보내 상시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중국이 군사적 도발을 하면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베트남의 실효 지배가 굳어지는 딜레마에 빠뜨리는 것이죠.

군사적 충돌은 피하면서도, 국제법과 외교적 명분을 최대한 활용해 우리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나무 외교의 실전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에게 배우는 생존의 기술

베트남의 외교는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기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국의 지정학적 운명을 정확히 이해하고, 국가의 생존과 번영이라는 확고한 ‘뿌리’를 지키기 위해 고안된 고도의 전략입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고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질수록,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기지로, 아세안의 중심 국가로 부상하며 몸값을 높이는 베트남. 그들의 아슬아슬하지만 현명한 줄타기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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