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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리포트

아메리칸드림의 악몽, 현대차 공장에 들이닥친 ICE의 칼날

by 박스피군 2025.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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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단속국의 한국인 구금

아메리칸드림의 악몽, 현대차 공장에 들이닥친 'ICE'… 한국인 300명 구금의 전말

2025년 9월 4일 목요일 오전, 미국 조지아주의 드넓은 평원 위에서는 거대한 꿈이 지어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손잡고 짓는 최첨단 배터리 공장. 이곳은 한미 경제 동맹의 굳건함을 상징하는 기념비이자, 수많은 한국인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에게는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할 기회의 땅이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 평범했던 건설 현장의 소음은 이내 헬리콥터의 굉음과 군용 차량의 위협적인 엔진 소리에 묻혀버렸다. 하늘에는 수색용 헬기가, 땅에는 장갑차까지 동원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FBI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마치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 대규모 급습의 목표는, 다름 아닌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어떻게 한미 동맹의 상징이 한순간에 범죄 현장으로 전락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300명이 넘는 우리 동포들은 차가운 수갑을 차고 구금되어야만 했을까? 이것은 조지아에서 벌어진 악몽 같은 하루에 대한 기록이자, 글로벌 비즈니스의 현주소와 냉혹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이민세관단속국

그들은 왜 수갑을 차야 했나? ESTA와 취업비자 사이

이번에 구금된 300여 명의 한국인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명확했다. '취업 비자 없는 불법 노동'.

미국의 이민법은 매우 엄격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 비자(B-1)는 관광이나 회의 참석, 시장 조사, 계약 협상과 같은 제한적인 비즈니스 활동만을 허용한다. 공장에 설비를 설치하고, 용접을 하며, 배선을 연결하는 등 현장에서 직접 몸을 움직여 일하는 '노동'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를 위해서는 H-1B(전문직)나 L-1(주재원)과 같은 정식 취업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날 단속된 한국인 기술자들 대부분은 ESTA나 B-1 비자로 미국에 입국했다. 한국 기업의 오랜 관행인 '단기 출장' 형식으로 파견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급한 불 끄러', '기술 지원하러' 전문가를 해외에 며칠 혹은 몇 달씩 보내는 것이 익숙하지만, 미국의 법 체계에서 이는 명백한 '불법 취업'이었다. '빨리빨리' 문화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한국의 파견 관행이, 원칙과 절차를 앞세우는 미국의 법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ICE는 "수개월간의 내사 끝에 조직적인 비자 규정 위반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히며, 이번 단속이 결코 우발적이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드러난 민낯, 복잡한 하청과 재하청의 고리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더욱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바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다.

미국 수사 당국이 밝힌 공장의 고용 구조는 거대한 피라미드와 같았다. 정점에는 현대차와 LG엔솔이 있고, 그 아래에 대형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과 같은 1차 협력사가 있다. 그리고 이 1차 협력사는 다시 수많은 2차, 3차 하청 및 재하청 업체에 인테리어, 배선, 설비 등 각 공정을 분배했다.

이번에 체포된 한국인 300여 명 중 현대차나 LG엔솔 본사 직원은 극소수(LG엔솔 46명)에 불과했다. 구금자의 80~90%는 바로 이 복잡한 하청-재하청 네트워크의 가장 아래 단계에 속한 중소 협력업체 소속 직원들이었다.

이러한 구조는 책임을 분산시키고 위험을 전가하는 데 용이하다. 원청인 대기업은 "우리는 1차 협력사와 합법적으로 계약했을 뿐, 그 아래 재하청 업체 직원의 비자 문제까지는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관리의 사각지대가 생기고, 그 틈새에서 불법적인 관행이 뿌리내리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수사 당국이 현대차-LG 본사뿐만 아니라 모든 하청업체의 고용 관련 서류 일체를 압수수색한 것은, 바로 이 불투명한 고용 네트워크의 실체를 파헤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대기업의 하청과 재 하청의 고리

차가운 구금소와 얼어붙은 한미 동맹

체포된 한국인들은 곧바로 ICE가 관리하는 구금 시설로 이송되었다. 한순간에 일터를 잃고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 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애틀랜타 총영사관 등 현지 공관은 즉각 비상 대응팀을 꾸려 구금자들을 직접 면담하고, 이들의 건강 상태와 법적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영사 조력을 제공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외교적 파장도 거셌다. 한국 외교부는 동맹국 기업의 건설 현장에 사전 통보도 없이 군사작전처럼 급습한 것에 대해 미국 측에 공식적으로 강한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이민법 위반 사건을 넘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 기조 속에서 한미 경제 동맹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다른 한국 기업들 역시 이번 사태를 '현실화된 리스크'로 받아들이며 충격에 휩싸였다.

 

조지아의 악몽이 남긴 질문들

 

구금된 인원들은 법적 절차에 따라 추방되거나, 일부는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공장 건설은 잠시 중단되겠지만, 결국에는 재개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지아의 악몽'이 남긴 상처와 질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 기업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속도뿐만 아니라, 현지의 법과 문화를 존중하고 투명한 경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관행이 얼마나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주었다.

한미 동맹의 상징이 되어야 할 배터리 공장은, 이제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좇는 '아메리칸드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속도와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존엄성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수갑과 구금 명령으로 기록된 조지아의 악몽은, 그 답을 찾으라는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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