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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리포트

친나왓 왕조의 몰락? 패통탄 총리 해임의 진짜 이유

by 박스피군 2025.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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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패통탄 친나왓, 최연소 총리의 몰락

 

"삼촌, 우리 군 사령관은 적이에요"… 태국 최연소 총리를 무너뜨린 통화 한 통

2025년 8월 29일, 태국 방콕의 헌법재판소.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재판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태국 역사상 최연소 총리이자, 강력한 정치 명문가 '친나왓' 가문의 세 번째 총리인 38세의 패통탄 친나왓. 그녀의 운명을 결정하는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죄목은 뇌물이나 부패가 아니었습니다. 정책의 실패도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1년 남짓한 총리직을 종식시킨 것은, 바로 적국이라 할 수 있는 캄보디아의 실권자와 나눈 '한 통의 사적인 전화' 였습니다.

어떻게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나눈 은밀한 대화가 그녀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비수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태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젊은 지도자의 극적인 부상과 더 극적인 추락,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태국의 깊은 정치적 갈등에 대한 기록입니다.

패통탄 친나왓, 한통의 사적인 전화

정치 명가의 막내딸, 태국의 아이콘이 되다

패통탄 친나왓의 등장은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정치 신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탁신 친나왓은 태국 정치사에 가장 강력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자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비운의 총리였고, 고모 잉락 친나왓 역시 총리직에 올랐다가 사법 쿠데타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친나왓'이라는 이름은 태국 서민과 농민들에게는 '희망'의 동의어였지만, 군부와 왕실로 대표되는 보수 기득권층에게는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패통탄은 이러한 가문의 후광과 비극을 동시에 짊어지고 2021년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쭐랄롱꼰대학교와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가족 소유의 거대 부동산 기업을 경영하며 쌓은 비즈니스 감각,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대중적 카리스마는 그녀를 순식간에 프아타이당의 중심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2024년 8월, 마침내 38세의 나이로 총리직에 오르며 태국 정치에 새로운 세대가 도래했음을 알렸습니다. 그녀의 등장은 군부와 기득권의 낡은 정치를 끝내고, 변화와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야심 찬 개혁과 냉혹한 현실의 벽

총리로서 패통탄은 야심 찼습니다. 그녀의 핵심 정책은 '디지털 지갑'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과 소득 불평등 해소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의 디지털 화폐를 지급하여 내수를 진작시키고, 농산물 가격 안정과 가계부채 해결에 힘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아세안(ASEAN) 및 한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전기차와 청정에너지 분야의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등 실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디지털 지갑' 정책은 막대한 재원 마련 방안과 실효성에 대한 비판에 부딪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고질적인 가계부채와 농산물 가격 하락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며,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친나왓 가문의 포퓰리즘 정책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야당의 비판과 함께, 그녀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지갑 정책의 실패

운명의 통화, 모든 것을 무너뜨리다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정책의 실패가 아닌, 외교적 스캔들이었습니다. 2025년 5월,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민감한 시기. 패통탄 총리는 캄보디아의 실권자이자 전 총리인 훈센 상원의장과 통화를 합니다. 그리고 이 대화 내용이 어떤 경로로든 외부로 유출되면서, 태국 정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유출된 통화에서 패통탄은 국가 간의 공식적인 대화가 아닌, 마치 가족처럼 훈센을 '삼촌(Uncle)' 이라 칭하며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한마디를 내뱉었습니다. 자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태국군 사령관을 '적(enemy)' 이라고 칭하며 불신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한마디는 태국 사회에서 '역린'을 건드린 것과 같았습니다. 왕실과 함께 국가의 양대 기둥으로 여겨지는 군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가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반역적 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보수 성향의 상원의원들은 즉각 그녀가 "총리로서의 헌법적 윤리를 위반하고 국가의 품위를 훼손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해임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상원의원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그녀가 부패하지는 않았지만, 국가 원수로서의 중립성과 책임감을 저버리고 군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여 국가의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결했습니다. '삼촌'이라는 호칭과 '적'이라는 단어. 이 두 마디가 태국 최연소 총리의 정치 생명을 끊어놓은 것입니다.

남겨진 질문들, 태국은 어디로 가는가

패통탄 친나왓의 실각은 단순히 한 개인의 몰락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난 20년간 태국을 끊임없이 분열시켜 온 거대한 정치 투쟁의 또 다른 단면입니다. 서민과 농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친나왓 가문의 포퓰리즘' 과, 군부·왕실·사법부로 대표되는 '보수 기득권 엘리트' 사이의 끝나지 않는 전쟁.

그녀의 1년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만으로는 태국의 진정한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전통적인 권력 구조의 보이지 않는 동의 없이는, 아무리 높은 지지를 받는 지도자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패통탄은 떠났고, 태국은 다시 한번 정치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진짜 질문은 '누가 다음 총리가 될 것인가'가 아닙니다. '과연 태국은 이 지독한 과거의 정치적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입니다. 한 정치 명가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분열된 왕국이 마주한 깊은 고민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친나왓 가문의 몰락 그리고 태국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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