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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탐마삿 학살, 잊지 말아야 할 그날의 진실

by 박스피군 2025.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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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뒤에 숨겨진 눈물, 태국의 가슴 아픈 현대사 이야기

태국하면 보통 눈부신 황금 사원, 에메랄드빛 바다, 맛있는 길거리 음식, 그리고 항상 환한 미소를 지닌 사람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미소의 나라' 뒤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깊은 상처와 눈물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오늘은 화려한 관광지의 이면에 가려진 태국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그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해 걸어온 험난한 여정을 함께 살펴보려 한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한 나라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빛과 그림자를 모두 알아야 한다 생각했었다.

 

"민주주의여, 오라!" 

1973년 10월, 피로 물든 함성 1970년대 초, 태국은 군부 독재의 그림자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타놈 끼띠카촌 총리가 이끄는 군사 정권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부정부패를 자행했다. 이에 분노한 대학생들을 시작으로 "헌법을 만들라!", "정치 개혁을 실현하라!"는 목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비극의 서막, 그리고 핏빛 10월 14일
 1973년 10월, 민주화를 요구하던 대학생 11명이 구속되자 분노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시민들이 합류하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10월 13일, 수도 방콕에는 무려 50만 명의 군중이 모여 평화로운 시위를 펼쳤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10월 14일, 역사는 비극의 장으로 변했다.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군은 마치 전쟁터처럼 탱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무자비한 무력 진압을 감행한 것이다. 평화롭게 외치던 민주주의의 함성에 총탄이 날아들었고, 거리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해버렸다.

공식 집계로 77명이 사망하고, 800여 명이 부상하는 참혹한 참극이 벌어졌다. 일부 자료에서는 사망자가 최소 46명 이상이라고 전하지만, 그날의 피와 절규는 단순한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미래를 꿈꾸던 대학생과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남겨진 상처와 꺼지지 않은 불씨

1973년 10월 혁명은 결국 군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참혹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이 스러져 갔고, 국가는 폭력의 깊은 상처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태국 사회에 민주주의에 대한 절실한 열망과 군부의 반복적인 정치 개입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남겼다. 국가 권력에 의한 잔혹한 시민 학살과 희생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법적 책임 추궁의 부재는 오늘날까지도 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잊을 수 없는 악몽, 1976년 탐마삿 대학 학살

"그날, 캠퍼스는 지옥이었다"

1973년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 태국 현대사에는 더욱 끔찍하고 잔혹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1976년 10월 6일, '탐마삿 대학 학살'이다. 이 사건은 태국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금기시되는 사건 중 하나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가 권력과 극우 세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날이기도 했다.

 

광기와 폭력이 캠퍼스를 뒤덮다
1973년 혁명 이후 잠시 민주화의 봄을 맞이하는 듯했던 태국은, 3년 전 축출되었던 군부 독재자 타놈 끼띠카쫀의 귀국으로 다시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의 정치 복귀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방콕 탐마삿 대학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주변 인도차이나 국가들의 공산화로 태국 사회는 극도의 위기감에 빠졌고, 강렬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보수·극우 세력의 결집은 더욱 강화되었다.

비극의 도화선은 어이없게도 학생들의 연극 한 편이었다. 10월 4일, 학생들은 정부의 노동운동 탄압으로 두 명의 운동가가 살해된 사건을 비판하는 풍자 연극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런데 이 연극 속 교수형 장면이 언론에 의해 "왕실 모독"으로 왜곡 보도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학생들이 공산주의 혁명을 모의한다!"는 선동과 함께 극우 세력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었다.

결국 10월 6일 새벽, 중무장한 경찰과 국경수비대, '마을 스카우트', '붉은 들소' 등으로 불리던 극우 민병대가 탐마삿 대학을 완전히 포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인간 사냥이 시작되었다. 경찰은 기관총과 실탄, 심지어 수류탄까지 동원해 캠퍼스 안의 학생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극우 민병대는 정문을 부수고 난입해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고문하고, 살해했다.


인간 존엄성이 무너진 그날의 기록

당시 현장의 참상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투항하거나 바닥에 엎드린 학생들조차 무자비한 폭력의 대상이 되었고, 일부 학생들은 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 처형되었으며, 분노한 군중은 그들의 시신을 의자와 몽둥이로 잔인하게 훼손했다. AP통신 닐 울비치 기자가 포착한 이 충격적인 장면은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태국 현대사의 잔혹성을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로 남았다.

학생들은 생존을 위해 짜오프라야강으로 뛰어들거나 인근 들판으로 도망쳤지만, 그곳에서도 집단 구타, 신체 절단, 심지어 산 채 화형에 이르는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이 계속되었다. 더욱이 여성 학생들에 대한 성폭력은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46명 사망, 167명 부상, 3,000여 명 체포를 발표했지만, 생존자들과 연구자들은 실제 사망자 수가 100명을 훨씬 넘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 충격적인 학살 직후, 군부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고, 가해자들은 놀랍게도 사면령으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탐마삿 대학 학살은 태국 사회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 사건은 금기시되어 언급조차 꺼렸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결코 묻힐 수 없다. 오늘날 탐마삿 대학 학살은 태국 민주주의와 인권, 국가폭력 문제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될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다.

반복되는 쿠데타, 끝나지 않은 시련

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 태국의 현대사는 마치 '쿠데타의 역사'라 불릴 만큼 군사 쿠데타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공식적으로만 19차례 이상, 비공식적인 시도까지 합하면 그 횟수는 훨씬 더 많았다. 쿠데타가 발생할 때마다 겨우 싹튼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중단되었고, 정치적 반대자와 시민들은 탄압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반복되었다.

2010년 방콕 도심에서 벌어진 '붉은 셔츠(UDD)'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은 비교적 최근의 아픈 기억이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군은 강경 대응으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90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0명에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 역시 국가적 비극으로 기록되며 태국 사회에 깊은 분열과 갈등을 남기게 되었다.

소외된 이들의 눈물, 그림자 속의 희생자들 

역사의 거대한 흐름 뒤에는 묻혀 있는, 세상에 주목받지 못한 채 고통받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1970년대에는 농민운동 지도자들이 의문의 암살을 당하거나 정치적 이유로 목숨을 잃는 사건들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또한, 북부 산악지대와 동북부 이산 지방의 농민들과 소수민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차별과 탄압 속에서 고통받아 왔다.

더불어, 베트남 전쟁과 캄보디아 내전 등 주변국의 혼란으로 수십만 명의 난민이 태국으로 밀려들었고, 이 과정에서 국경지대에서는 크고 작은 무력 충돌과 함께 끊임없는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하였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권리가 짓밟히고, 그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외면당했던 어두운 역사 또한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태국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지금까지 태국의 현대사에 새겨진 가슴 아픈 사건들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1973년 민주화 혁명의 뜨거운 함성과 희생, 1976년 탐마삿 대학 학살의 참혹한 비극, 반복되는 군사 쿠데타와 유혈 진압, 그리고 소외된 이들의 눈물까지. 이러한 사건들은 태국 사회에 깊고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함께 소중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아픈 과거를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다. 하지만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을 때에만 우리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태국이 걸어온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험난하고 긴 여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기억하며, 태국 사회가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이루어 더욱 성숙하고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나가기를 간절히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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