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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태국의 근대사, 20번 쿠데타? 끝나지 않는 굴레

by 박스피군 2025.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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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정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 (국왕, 군부, 그리고 끝나지 않는 민주주의 여정)

"미소의 나라" 태국.

황금빛 사원과 눈부신 해변,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에게는 평화롭고 매력적인 여행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미소 뒤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쉼 없이 격동하며 때로는 피로 얼룩진,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인 역사가 숨겨져 있다. 절대왕정의 종말부터 수십 차례의 쿠데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좌절, 그리고 여전히 강력한 군부와 왕실의 영향력까지. 오늘은 태국의 복잡다단한 근현대 정치사와 현재의 정치·행정 시스템을 더욱 깊이 있게 조사해 보았다.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 :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1932년)

1932년 이전, 태국(당시 시암)은 국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국이었다. 모든 결정이 국왕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졌지만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다. 서구에서 교육받고 돌아온 지식인층과 신흥 군인 세력들은 변화를 갈망했고, 마침내 1932년, 거의 피 흘리지 않은 평화적인 쿠데타(샴 혁명)가 성공하면서 태국 역사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혁명으로 800년간 지속된 절대군주제가 막을 내리고, 최초의 헌법이 제정되면서 국왕은 국가의 상징적 존재로 남되 실제 통치는 헌법과 의회에 의해 이루어지는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다. 태국 현대 정치 드라마의 서막이 이렇게 오르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새로운 체제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구세력과의 갈등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끝나지 않는 '정치 롤러코스터', 쿠데타와 헌법, 반복과 격동의 역사

입헌군주제라는 새로운 틀이 마련되었지만, 태국 정치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다. 1933년, 첫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태국은 군부, 왕실과 연결된 귀족 세력, 그리고 신흥 정치 엘리트들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끊이지 않는 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태국이 현재까지 약 2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쿠데타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쿠데타가 성공할 때마다 기존 헌법은 휴지처럼 폐기되거나 집권 세력의 입맛에 맞게 새롭게 개정되었고, 이렇게 헌법이 바뀐 횟수만 해도 무려 17번에 달한다. 어찌보면 막장 국가 같기도 한데, 어찌어찌 잘 굴러가고는 있다.

이는 헌법이 국가의 안정적인 기본 틀이 되기보다는, 권력 투쟁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의미하며, 정치적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뜨겁게 분출되던 시기였기에, 학생들과 시민들은 독재에 항거하며 거리로 나섰고, 이에 맞선 군부 정권의 강경 탄압으로 인해 때로는 유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973년 학생 항쟁, 1976년 탐마삿 대학살, 그리고 1992년 '검은 5월(Black May)' 사건 등은 민주주의를 향한 태국 국민들의 처절한 투쟁과 그 과정에서의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마다 군부는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거나 직접 정권을 장악하며, 태국 현대사는 '헌법 다시 쓰기'와 '쿠데타 시즌 N'의 반복처럼 보이기도 했다.

 

탁신 리턴

'탁신 시대'와 깊어지는 균열, 끝나지 않는 색깔 논쟁 (2000년대 ~ 현재)

1990년대 후반, 태국은 비교적 민주적인 '국민의 헌법'(1997년 제정)과 함께 잠시 정치적 안정을 찾은 듯했으나 2001년, 통신 재벌 출신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 탁신 친나왓이 총리로 당선되면서 태국 정치는 다시 한번 격동의 시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탁신 총리는 농촌 지역과 도시 서민층을 위한 혁신적인 복지 정책과 경제 개발 전략(이른바 '탁시노믹스')으로 압도적인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 측근 비리, 부패 의혹, 그리고 왕실과의 미묘한 긴장 관계는 군부, 왕실 지지 보수 세력, 도시 중산층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된다. 이로 인해 탁신 지지 세력(주로 농촌 및 북부/동북부 지역 기반의 '레드 셔츠')과 반(反)탁신 세력(주로 도시 중산층 및 남부 지역 기반의 '옐로 셔츠') 간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갈등, 이른바 '색깔 정치'가 시작되었다.

결국 탁신 총리는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해 해외로 망명해야 했다. 이후에도 그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총리가 되는 등 탁신계 정당은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4년 또다시 군부 쿠데타(당시 육군 총사령관이었던 쁘라윳 짠오차 주도)가 발생하거나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정권을 잃는 일이 반복된다. 특히 2014년 쿠데타 이후 들어선 군정은 2017년 새로운 헌법을 통해 군부가 상원 의원 전원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군부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2020년대 들어서도 태국 정치의 불안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왕실 개혁을 포함한 근본적인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과 사회적 갈등이 이어졌다. 가장 최근인 2023년 총선에서는 개혁 성향의 전진당(MFP)이 돌풍을 일으키며 제1당으로 부상했지만, 기득권층의 반발과 헌법재판소의 개입으로 결국 집권에 실패하게 되었다. 2024년 8월, 탁신계인 프어타이당의 패통탄 친나왓이 군부와 보수 세력이 포함된 복잡한 연립 구도 속에서 총리로 선출되면서, 태국 정치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태국 정치의 '보이지 않는 손', 군부와 왕실의 '특별한' 역할

태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군부와 왕실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이들은 태국 정치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때로는 안정의 축으로, 때로는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 군부 : 태국 군부는 단순한 국방 조직을 훨씬 넘어, 국가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자 정치의 핵심 행위자로 자리 잡았다. "국가 안정", "왕실 수호", "부정부패 척결" 등의 명분을 내세우며 쿠데타를 통해 반복적으로 정치에 개입해왔고, 국가 운영 전반에 걸쳐 그 영향력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군부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과 군부가 임명하는 상원을 통한 의회 영향력 행사는 최근 태국의 정치사에도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다.

- 왕실 : 입헌군주제 하에서 국왕은 형식적으로 상징적인 국가원수이지만, 태국 사회에서 왕실이 누리는 정신적 권위와 국민적 존경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국왕은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거나, 때로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특히 오랜 기간 재위하며 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라마 9세)의 카리스마는 태국 사회 통합의 중심축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 국왕인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시대에도 왕실의 권위는 여전히 강력한 상황이다.

군부와 왕실은 역사적으로 서로의 권위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종종 보수적인 정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왔다. 이러한 강력한 '군주-군부 네트워크'태국 정치의 핵심적인 특징이자, 동시에 민주적 개혁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태국의 행정 시스템, 중앙집권적 구조와 지방의 미약한 목소리

 태국의 행정 시스템은 수도 방콕에 권력이 집중된 매우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정은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총리실과 19개의 중앙 부처(예: 막강한 권한을 지닌 내무부, 국방부, 재무부 등)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은 수도인 방콕(특별행정구역)과 또 다른 특별자치시인 파타야를 제외하고 76개의 주(짱왓)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는 다시 여러 개의 구(암퍼)와 면(땀본), 그리고 마을(무반) 단위로 세분화되어 있다. 주지사를 비롯한 주요 지방 행정 책임자는 대부분 중앙정부에서 임명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방자치는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지방 분권과 주민 참여 확대에 대한 요구도 점차 커지고 있는 추세다.

 

태국 정치, 변화와 안정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지금까지 태국의 격동의 근현대 정치사와 오늘날의 정치·행정 시스템을 살펴보았다. 태국은 공식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부와 왕실이라는 전통적인 권력 집단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며,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권위주의적 질서 유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변화해 온 나라인 태국이다.

수많은 쿠데타와 헌법 개정의 역사 속에서도 태국 국민들은 더 나은 민주주의와 사회를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최근 새로운 총리의 등장과 함께 태국 정치가 또 어떤 변화의 소용돌이를 맞이하게 될지, 그리고 뿌리 깊은 정치적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진정한 안정과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소 뒤에 숨겨진 태국의 치열한 정치 드라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 역동성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 글이 태국이라는 나라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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