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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캄보디아의 근대 정치 역사

by 박스피군 2025. 2. 12.

 

 캄보디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블로그 한페이지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근대 정치 역사에 관련하여 기준점을 1900년대 이후로 잡고 정리를 해보았다. 주요 정치 역사적 기준점을 크게 8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볼 예정이다. 

 1900년대 이후 캄보디아의 역사는 굉장히 다이나믹하기도하고, 때론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하여,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국가 내전, 악명높았던 크메르 루즈 정권, 그리고 현대 입헌군주제로 이어지는 복잡하면서도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쳤다. 

 

 

 

 

1. 프랑스 식민지 시대 (1863~1953)

186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고, 1887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에 편입되었다.

1900년대 초반의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이 시기는 국왕의 중앙집권적 통치가 약화되었고, 전통적인 왕권이 크게 제한된 시기였다. 조선시대와 비슷한 농업 중심이었기에 풍요롭지만 식민지 시대 이후 경제적으로 약화되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이 잠깐 캄보디아를 점령하기도 했는데, 전쟁이 끝난 뒤에 다시 프랑스가 돌아와 보호국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1941년 노로돔 시하누크가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 점차 독립운동이 점점 거세졌고, 1953년 마침내 노로돔 시아누크 왕이 외교적으로 프랑스를 설득해서 독립을 이뤄낸다.

 

2. 독립과 시하누크 정권 (1953~1970)

 독립 후 노로돔 시아누크 왕은 왕위를 내려놓고 직접 총리가 되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국정을 운영하면서 캄보디아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꽤 안정적이었지만,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 중국 같은 강대국들이 캄보디아 주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매우 복잡해졌다. 시아누크는 중립노선을 표방하며 외교적으로는 비도맹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결국 1970년에 론 놀이라는 장군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몰아내고 크메르 공화국을 세웠다.

 

3. 론 놀 정권과 공화국 시대 (1970~1975)

 1970년 론 놀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시하누크를 축출하고 캄보디아 공화국을 수립했지만, 당연하게도 정치적 불안정을 가지고 있는 정권이었고,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인해 내전이 격화되며 캄보디아는 혼란에 빠진다.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론놀 정부였지만, 독재정권이나 다름없었던 론 놀 정권은 정치적 억압과 부패문제가 점차 심화되면서 캄보디아의 정국은 걷잡을수 없이 불안정해진다. 이때 공산주의 세력인 크메르 루즈(Khmer Rouge) 가 등장하여 점차 세력을 키워나가다 수도인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론놀 정권의 공화국은 붕괴하게 되었다.

 

4. 크메르 루즈 정권 (1975~1979)

 1975년, 크메르 루즈가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캄보디아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폴 포트(PoI Pot)가 이끄는 공산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는 민주 캄푸치아를 선포하며 매우 급진적인 공산주의 정책을 펼쳤는데, 화폐를 폐지하고, 도시를 완전히 비우고 모든 국민을 강제로 농촌으로 보내 집단 농업 강경책을 실시한다. 거기에 학교나 병원, 종교 시설 등 을 없애고, 지식인이나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해 버린다. 그리고 끔찍하고 비극적인 킬링필드(Killing Fields)라고 불리는 대학살이 일어난다. 학자들은 약 170만~200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는 만큼 정말 끔찍한 시대였다. 자신만만했던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는 베트남계 주민들을 학살하고 베트남을 향해 국경 도발을 일으키고야 마는데 이는 크메르 루즈 정권 몰락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5. 베트남 점령과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1979~1991)

 폴 포트 정권의 끔찍한 잔혹함은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았지만, 결정적으로 베트남을 도발하면서 1978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하기에 이른다. 전쟁에 패한 캄보디아 왕국은 1979년, 헹 삼린을 내세운 친베트남 정부(캄푸치아 인민공화국)가 수립되었고, 전쟁에서 진 폴 포트와 크메르 루즈는 밀림으로 도망가서 끝까지 항전하며 게릴라전을 벌인다. 

하지만 캄보디아 국민들은 베트남의 점령도 탐탁지 않아 했고,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헹 삼린 정부는 고립상태나 다름없었다. 결국에는 유엔의 중재로 1991년 파리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서 캄보디아 내전이 종식되고, 끝까지 항전하던 폴포트의 크메르 루즈도 매우 약화 되었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 왕국에는 다당제 민주주의 복원이 추진되었다.

 

6. 유엔 관리와 입헌군주제 복원 (1991~1993)

 유엔의 중재로 1991년 파리 평화 협정이 체결된 이후, 캄보디아에  유엔 잠정통치기구(UNTAC)가 설립되어 평화 유지와 민주 선거 준비를 감독한다. 1993년 선거 결과, 총선에서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고, 노로돔 시아누크가 다시 국왕으로 복귀하며,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펑신펙(FUNCINPEC)의 라나리드CPP(캄보디아 인민당)의 훈 센이 공동총리로 취임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캄보디아 왕국은 불안한 상태였다.

 바로 훈 센(Hun Sen)이란 인물 때문이다. 훈 센은 1985년부터 총리를 해던 인물인데, 1997년에 사실상의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야 만다. 그 후로 약 38년 이란 시간 동안 장기 집권을 이어나간다. 캄보디아의 멈췄던 경제 성장을 이끌긴 했지만, 독재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7. 훈 센 정권과 장기 집권 (1997~2023)

 훈 센은 1985년부터 총리를 했지만,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인 노로돔 라나리드가 이끄는 당(펑신펙FUNCINPEC) 이 1등을 하고 훈센이 이끌던 당 인민당(CPP)이 2등을 하여 여 둘이 공동으로 정부를 운영하는 이상한 체제를 시작하는데, 그걸 참을 수 없던 훈 센이 1997년, 쿠데타를 일으켜서 라나리드를 몰아내고 사실상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훈 센은 쿠데타 이후에도 계속해서 총선을 치르면서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독재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첫쨰로, 야당 탄압을 시작하는데, 반대 세력은 감옥에 가거나, 해외로 도망치거나, 갑자기 실종되기도 하였다.

둘째로, 언론 통제를 시작하며, 독립적인 언론사들은 폐쇄되고, 남은 언론사들은 정부가 장악해 버린다. 

셋째로, 경제 성장을 활용하는데, 2000년대 이후 캄보디아 경제가 성장하면서 “내가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으로 홍보하곤 하였다.

넷째로, 선거 조작 의혹이 있었다. 선거 때마다 야당을 탄압하거나 부정선거 논란이 많았다.

 

특히 2017년에는 최대 야당이었던 캄보디아구국당(CNRP)을 강제로 해산시켜버리는데, 그 이후로 선거는 거의 형식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훈 센은 CPP를 기반으로 약 37년간 장기 집권하며 중앙집권적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여 장기집권 이후 자신의 자식에게 권력을 이양하기에 이른다. 경제적으로 볼 때, 캄보디아는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관광 산업 발전을 통해 점차 성장해 나갔으나,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8. 훈 마넷 정권 출범 (2023~현재)

 독재자였던 훈 센은 결국 2023년 아들에게 총리직을 물려주며, 사실상의 세습체제를 구축했어. 캄보디아의 새 총리에 오른 훈 마넷(Hun Manet)이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 훈 마넷은 영국에서 공부하고 미국 웨스트포인트(군사학교)도 나와 엘리트나 다름없는 코스를 밟았다. 권력을 물려받은 훈 마넷이 진짜로 개혁을 할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며,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정책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훈 마넷의 정부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세대 교체를 강조했지만, 실질적으로 훈 센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사실상의 가족독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캄보디아가 나아갈 방향이 민주주의 인지, 아니면 독재 왕국인지는 지켜봐야 알 것이다.

 

출처: 크메르 타임즈(https://www.khmertimesk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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