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미소 뒤의 그늘, 미얀마의 현재, 정치와 행정 들여다보기
황금빛 파고다가 빛나고 다채로운 민족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라.
우리가 미얀마를 떠올릴 때 흔히 그리는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문화와 자연 이면에, 오늘날 미얀마는 깊은 정치적 격랑 속에 놓여져 있다. 2021년 발생한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정치와 행정 시스템은 큰 혼란을 겪고 있으며, 국민들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미얀마의 현재 상황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 뒤에 가려진 정치 및 행정 시스템의 현실과 그로 인해 미얀마 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함께 살펴보려 한다.
겉과 속이 다른 정치, 민주주의 시스템과 군부 통치의 현실
서류상으로 미얀마는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이다. 2008년 국민투표를 통해 채택된 헌법에 따라, 2011년부터는 민주적인 절차로 선출된 대통령이 국가를 이끌고,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연방의회가 입법권을 행사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하며, 길었던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길지 못했다.
2021년 2월 1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2020년 총선 결과에 불복하며 쿠데타를 일으키고야 말았다. 군부는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했지만, 실제로는 NLD의 압승으로 군부의 정치적·경제적 기득권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것이 쿠데타의 주된 배경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군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당시 윈 민 대통령과 실질적 지도자였던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을 전격 체포하며 다시 한번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50여 년간 이어졌던 군부 통치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군부 통치하의 미얀마, 국가행정평의회(SAC)와 끝나지 않는 비상사태
쿠데타 이후 미얀마는 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이 의장을 맡은 국가행정평의회(SAC)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중이다. SAC는 사실상 군부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군부는 쿠데타 직후 1년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헌법상 허용된 연장 횟수(6개월씩 2회)를 넘어 반복적으로 비상사태를 연장하며 통치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는 군부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를 명백히 보여주는 행보라 볼 수 있다. 군부는 2025년에 총선을 실시하여 민간 정부로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게, 주요 야당인 NLD는 강제 해산되었고,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민주 인사들은 여전히 구금 상태이며, 전국적으로 군부와 저항 세력 간의 무력 충돌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가 과연 공정하고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국내외적으로 팽배한 상황이다. 국내 외의 많은 이들은 이 선거가 군부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는 가운데 미얀마의 혼란한 상황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저항의 불씨와 민족통합정부(NUG)와 계속되는 내전
군부의 쿠데타와 폭력적인 통치에 맞서, 미얀마 국민들의 저항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쿠데타로 축출된 민주 진영 의원들과 소수민족 대표, 시민사회 세력 등은 힘을 합쳐 민족통합정부(NUG)를 구성하였다. NUG는 국제사회에 미얀마 국민을 대표하는 합법 정부임을 주장하며, 군부 통치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미얀마 통치 군부에선 NUG를 불법 단체이자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NUG 산하에는 시민들로 구성된 무장 저항 조직인 시민방위군(PDF)이 있으며, 이들은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자치와 권리를 위해 싸워온 소수민족 무장단체(EAO)들과 연대하여 군부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로 인해 미얀마는 사실상 전국적인 규모의 내전 상태에 빠져든 상황이다. 군부와 저항 세력 간의 교전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와 피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나라의 틀인 행정 구역과 위태로운 권력 구조
미얀마는 지리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매우 다양한 나라다.
행정구역 역시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여, 버마족이 다수인 7개의 '도(Region)'와 소수민족이 중심이 된 7개의 '주(State)'로 구성되어 있다. (예: 양곤도, 만달레이도 / 샨주, 카친주 등) 이들 도(따잉데따찌)와 주(삐내)는 다시 군, 현, 읍, 면, 리 등의 하위 단위로 나뉘게 된다.
가장 넓은 주는 샨 주이고,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양곤도이다.
헌법상으로는 연방정부와 주/도 정부 간, 그리고 중앙 정부 내에서도 입법-사법-행정 간 권력이 분립되고 공유되는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각 주/도는 자체적인 입법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미얀마 군부는 오랫동안 국방과 안보뿐 아니라 경제, 행정 등 국가 운영의 핵심 영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군부 스스로가 헌법 위에 군림하며 독자적인 시스템과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른바 '국가 안의 국가(state within a state)'와 같은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다. 2021년 쿠데타는 이러한 군부의 특권적 지위와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사건이며, 진정한 의미의 연방주의나 권력 분점은 아직까지도 요원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군부 통치가 남긴 깊은 상처: 미얀마 사회의 현주소
2021년 2월 이후, 미얀마 군부 통치는 미얀마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참혹한 상처를 남겼다. 그 영향은 가히 총체적이라 할 수 있다.
- 짓밟힌 인권과 사라진 자유 : 군부는 쿠데타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포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후로도 정치적 반대 세력, 민주 활동가, 언론인, 심지어 일반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체포, 구금, 고문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5년 현재까지 2만 4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구금되었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인권 유린을 당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는 실종된지 오래였다.
- 무너진 경제와 절망에 빠진 민생 : 쿠데타 이후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국제 사회의 제재까지 더해지면서 미얀마 경제는 급격히 추락하게 되었다. 2021년 한 해에만 경제 성장률이 -20% 가까이 곤두박질쳤고, 한때 성장하던 중산층은 3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실업률과 빈곤율은 치솟았고, 물가는 폭등했으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 미래를 빼앗긴 안타까운 청춘 : 2024년부터 시행된 강제 징집제는 미얀마 젊은이들을 더욱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는데, 18세에서 35세 사이의 남성과 18세에서 27세 사이의 여성은 언제든 군대에 끌려갈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며, 이를 피하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국경을 넘거나 숨어 지내고 있다. 교육과 경력이 단절되고, 강제로 전쟁터에 내몰릴지 모른다는 공포는 젊은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앗아가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두뇌 유출과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 전쟁의 일상화, 인도적 재앙 : 군부와 저항 세력 간의 내전은 이제 미얀마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부는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한 무차별 공습, 마을 방화, 식량 및 의약품 봉쇄 등 반인도적인 전쟁 범죄를 서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되거나 국내 실향민으로 떠돌고 있으며, 기본적인 의료, 교육, 식량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인도적 위기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 닫힌 세상과 통제와 감시 : 군부는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거나 속도를 제한하고, VPN 사용을 단속하며 외부 세계와의 정보 소통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다. 언론은 탄압받고 있고, 시민들은 SNS 활동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야간 통행금지, 불시 검문, 강제적인 주민 등록과 생체 정보 수집 등 일상화된 감시와 통제는 시민들의 자유를 심각하게 옥죄고 있다.
- 무너진 질서와 강력 범죄의 확산 : 정치적 혼란과 행정 공백 상태는 사회 질서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온라인 도박, 보이스 피싱 사기, 인신매매 등 초국가적 범죄 조직들이 활개를 치고 있으며, 치안 부재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얀마는 어디로
오늘날 미얀마는 깊은 정치적 불안정, 격화되는 내전, 심각한 인도적 위기, 무너진 경제,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군부의 강압적 통치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라는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연방주의를 실현하고,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며, 국민들의 삶을 회복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시급한 과제다.
미얀마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얀마 국민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황금빛 파고다의 나라 미얀마가 하루빨리 평화와 안정을 되찾고, 국민들이 다시 밝게 미소 지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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