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 (Phnom Penh)
캄보디아의 수도로,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도시다. 이곳은 메콩강과 바싹 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캄보디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프놈펜의 초기 정착지는 5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 도자기 제작의 중심지였다. 14세기 경, 앙코르 왕국의 군주 퐁헤아 얏(Ponhea Yat) 왕에 의해 앙코르 톰에서 프놈펜으로 수도가 천도되었다. 원래의 수도 앙코르 톰이 시암에 의해 점령된 이후 약탈당하자, 퐁헤아 얏 왕은 왕국의 부흥을 위해 새로운 수도로 이전할 것을 결심, 그 때 선택된 장소가 바로 프놈펜이었다.
프놈펜이라는 도시는 전설에 따르면, 1372년, 메콩강에서 나무 속에 숨겨진 불상을 발견한 펜(Penh)이라는 여인에서 유래되었다. 1372년경 펜 (Lady Penh)은 메콩강에서 떠내려온 코키(Koki) 나무를 발견하였는데, 그 속에서 네 개의 불상과 비슈누의 석상이 들어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불상과 석상에서 신비함을 느낀 그녀는 이 불상들을 모시기 위해 언덕에 사원을 짓게 되는데, 이 언덕이 바로 와프놈(Wat Phnom) 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후 이 언덕의 이름이 프놈펜(Phnom Penh)으로 확장되어, 도시 전체를 대표 하는 이름이 되었다. 프놈"Phnom"은 크메르어로 "언덕"을 의미하며, 펜"Penh"의 경우는 이 불상들을 처음 발견하고 사원에 안치시킨 여성 펜 "Lady Penh"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부터 19세기 초, 이 시기에는 캄보디아의 왕실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빈번하여, 수도가 여러 번 변경되는 데 이 시기의 주요 수도는 프놈펜에서 오우동으로 이전 되었다가 19세기 프랑스에 의해 다시 프놈펜으로 수도가 변경되었다.
19세기 경, 캄보디아의 노로돔 왕은 시암의 침공을 두려워하여 프랑스에 보호를 요청하였다. 이로 인해 1863년 8월 11일, 프랑스와 캄보디아 간에 보호 조약이 체결되는데, 이 조약은 캄보디아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프랑스가 캄보디아의 외교 및 무역 관계를 통제하게 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시기였다. 그와 별개로 19세기 중반, 프놈펜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다시 중요한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1866년부터 캄보디아의 수도로 지정되어, 현재의 왕궁이 건설되고 다양한 인프라가 형성되며, 현대적인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프놈펜을 중심으로 캄보디아에 서구식 교육과 문화를 도입하여, 캄보디아의 교육 시스템과 문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고, 1897년에는 캄보디아의 노예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이는 프랑스 식민 지배의 긍정적인 유산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프놈펜은 정치적, 경제적 중심도시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프랑스 식민 지배는 1953년, 캄보디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종결되었고, 프놈펜의 발전도 여기에서 멈추게 된다. 이후 시하누크왕이 군사 쿠데타로 축출당하자,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크메르 루즈 정권은 내전을 일으키게 되고, 1975년, 프놈펜을 점령하며 내전에서 승리 캄보디아의 정권을 잡게 된다.
캄보디아의 권력을 휘어잡은 크메르 루주 정권은 수많은 인권 유린과 학살을 자행하게 되는데, 특히, 지식인, 소수 민족, 종교인 등이 표적이 되었으며, 투올 슬렝(S-21) 감옥과 초응에크 학살 센터(킬링필드)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하게 된다. 발전된 도시였던 프놈펜은 이 시기에 많은 피해와 파괴를 당하게 되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캄보디아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으며, 이 정권의 잔혹한 정책과 행동은 아직까지도 캄보디아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78년, 베트남이 크메르 루주 정권을 물리치고 캄보디아에 개입하며, 프놈펜을 점령하게 되었다. 파괴된 도시 프놈펜은 다시 재건되기 시작하였다.
여러 사건들이 얽히고 설킨 프놈펜은 역사적, 문화적 랜드마크가 풍부한 도시로 변화하였다.
프놈펜을 여행하게 된다면 둘러볼만한 주요 관광지는 다섯 군데를 정리해 보았다.
왕궁과 은탑 (The Royal Palace & Silver Pagoda)
프놈펜의 왕궁과 은탑은 캄보디아의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잘 나타내는 랜드마크나 다름없다. 이 두 곳은 캄보디아의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간단한 역사와 정보를 알고 간다면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볼거리도 풍부하여 사진 찍을 스팟도 다양하다.
간단하게 둘러보자면, 왕궁은 1866년 노로돔 1세 왕의 치세에 건설되었는데, 이 궁전은 전통적인 크메르 건축 양식과 프랑스 스타일을 결합한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왕궁은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왕좌 홀(Throne Hall)이다. 이곳은 왕실 의식과 중요한 행사에 사용되며, 전통적인 크메르 스타일과 서양 스타일의 왕좌가 있다.
왕궁은 캄보디아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는 중요한 장소이며, 다양한 예술과 학문이 발전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은탑은 왕궁 내에 위치해 있으며, 공식적으로 Wat Preah Keo Morakot이라고 불리지만 통칭 실버 파고다(Silver Pagoda)라고 불린다. 이 사원은 1892년에 처음으로 목조 건물로 지어졌으며, 1962년에 들어서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되었다. 은탑의 이름은 바닥에 깔린 5,329개의 은 타일에서 유래되었는데, 에메랄드 불상과 금으로 만든 마이트레야 불상 등 많은 보물과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은탑은 캄보디아의 중요한 불교 사원으로, 왕실의 예배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캄보디아의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왓 프놈펜 (Wat Phnom Daun Penh)
도시의 이름을 딴 사원으로, 고요한 환경과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4세기에 건설된 이 사원은 프놈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도시의 전신이 된 곳이기도 하다. 왓 프놈펜은 46미터 높이의 사원으로, 전통적인 크메르 건축 양식과 함께 아름다운 벽화와 불상이 존재한다. 사원의 내부에는 중앙 제단과 여러 불상이 있으며, 벽에는 불타의 전생 이야기인 자타카와 라마야나의 크메르 버전인 레암케르가 그려져 있다.
왓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문화적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행운을 비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시험이나 사업에서 성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프놈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나, 외국인에게는 소액의 입장료가 있으며, 방문 시에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
투올 슬렝 대량 학살 박물관(Tuol Sleng Genocide Museum)
흔히 S-21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전범 박물관으로, 크메르 루주 정권의 학살과 고문에 대한 중요한 증거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박물관은 과거 투올 스바이 프레이 고등학교였던 곳을 1975년 크메르 루주가 보안 감옥 21(S-21)으로 전환한 후,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S-21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주요 감옥과 고문 시설로 사용되었다. 원래 이곳은 전직 학교 건물이었으나, 외벽은 전기 감전된 철조망으로, 교실은 감옥 셀로 개조되었다. S-21에 수감된 사람들은 대부분 고문과 협박을 통해 억지로 죄를 자백하게 만들었으며, 이후 초응에크 학살 센터(킬링필드)로 이송되어 살해되었다. 약 20,000명이 이곳을 거쳤으며, 그 중 단 12명만이 생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은 고문 도구, 철사 침대, 그리고 수많은 수감자들의 흑백 사진을 전시하고 있으며, 이 사진들은 수감자들이 고문 전후에 찍은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후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 네 개의 주요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건물은 고문실, 감옥 셀, 사진 전시실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건물 A는 마지막 희생자들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로, 건물 B는 사진 전시실로 개방되어 있다.
투올 슬렝은 캄보디아의 역사적 사건을 교육하고 기념하는 중요한 장소로, 많은 캄보디아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이곳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잔혹함을 상기시키며,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박물관은 캄보디아의 어두운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중요한 장소로,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초응에크 학살 센터(킬링필드) Choeung Ek Memorial (The Killing Fields)
초응에크 학살 센터, 흔히 Choeung Ek라고 불리는 이곳은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전 킬링필드다. 이곳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 루주 정권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장소로, 캄보디아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상징하고 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초응에크는 과수원과 중국인 묘지였으나, 크메르 루주 정권이 이곳을 학살 장소로 사용하게 된다. 대체로 투올 슬렝(S-21) 감옥에서 온 수감자들이 이곳으로 이송되어 학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학살은 주로 곡괭이, 대나무, 칼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총알을 절약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전해진다.
초응에크는 현재 부처탑으로 마련된 기념물이 있다. 이 탑은 아크릴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5,000개 이상의 인골이 보관되어 있다. 많은 인골이 파괴되거나 깨져 있는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니 관람에 주의가 필요하다. 초응에크에서는 약 8,895구의 시체가 발굴되었는데, 이곳은 캄보디아 전역에 있는 약 300개의 킬링필드 중 가장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초응에크는 캄보디아 정부가 관광객에게 방문할 것을 권장하는 장소로, 매년 5월 20일에는 기억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초응에크 학살 센터는 캄보디아의 비극적인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중요한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희생자들을 기린다.
중앙시장(Phsar Thom Thmei)
중앙시장, 또는 프사 톰 트메이(ផ្សារធំថ្មី)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가진 시장이다. 이 시장은 1937년에 개장했을 때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로 알려졌으며, 현재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중앙시장은 아르 데코 스타일의 건축물로, 프랑스 건축가 루이 셔숑(Louis Chauchon)이 설계하고 장 데이봐(Jean Desbois)와 블라디미르 칸다우로프(Wladimir Kandaouroff)가 감독하여 건설되었다. 시장의 지붕은 노란색 둥근 모양으로, 4개의 긴 복도가 있어 다양한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여기에는 금, 은, 고대 동전, 화폐교환, 남자와 여자의 옷, 시계, 책, 꽃, 음식, 직물, 신발, 기념품, 생선, 회물, 후식, 짐 등이 포함되며, 특히, 보석과 금은 전시되어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중앙시장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중앙시장은 프놈펜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이곳은 캄보디아의 문화와 경제를 상징하며, 다양한 상품을 흥정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그 이외에도 메콩강을 따라하는 선셋 크루즈나 역사 투어도 추천하는데, 이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으나 살짝 지루한 감이 있기에 관심있는 사람만 해보는 것이 좋다.
프놈펜을 방문하기 좋은 시기는 10월부터 11월까지로, 이때는 워터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하며 날씨도 쾌적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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